(호주 전 오위(伍尉) 최기(崔奇) 나이 52세, 본은 청하(淸河)로써 영인진(寧仁鎭)에 들어갔음. 부 검교 낭장(檢校郞將) 주장(注莊) 사망. 조 검교 호군(檢校護軍) 최강(崔剛) 사망. 증조 낭장(郞將) 정비(貞庇) 사망. 모 조이[召史] 사망, 본 우계(羽溪). 외조 호장(戶長) 이도자(李都者) 사망. 호주의 처 복가이(福加伊) 본 영인(寧仁). 처부 호장 김문(金文) 사망. 처조 호장 영지(英之) 사망. 처증조 점물이(占勿伊) 사망. 처모 조이[召史] 본 같은 마을. 처외조 김우금(金于金). 병산 ■..■)
조선시대 이태조 때에 화령부에 거주하던 사람인 청하최씨 최기 의 외할아버지는 우계이가(羽溪李)로 호장을 지낸 이도자의 따님이라는데, 이미 조선 건국 이전에 우리 족보에는 등재되지 못했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미 우계이가 본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족보에 등재된 선조들 외에도 더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계군부인의 친정아버지 우계이씨 내시 양온령동정 이신송과 이번에 찾은 최기의 외조부 호장 이도자가 그들입니다.
본관은 우계인데 호장(戶長)이라고만 나온 것으로 보아서는 우계나 주변지역 호장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지역의 호장이었으면 예를 들면 삼척호장이라 가정한다면 본관 아무개, 삼척호장 이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우계지역에서 호장으로 있던 우계이가라면 분명 우리 문중 사람이 확실합니다.
우리 선조 중 이적(李迪)이란 분이 호는 옥계이고 강릉 우계 해령산에 살았는데 이분이 호장(戶長)이 되고, 그의 아들인 이홍준(李洪俊) 역시 호장(戶長)을 지냅니다. 그 뒤로 우리 족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몇세대에 걸쳐서 호장이나 부호장 등의 직책을 역임한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옥천부원군파의 후손들 중에도 정조호장을 지낸 분이 한분 나타납니다. 본관이 우계이가이고 우계 혹은 주변지역에서 호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이분 외에도 우리 족보에는 실전되었지만 우계이가 사람인 분들이 몇분 있습니다.
1250년대 살던 달성배씨 배정지의 어머니인 우계군부인의 친정아버지 이신송이 그분입니다. 배정지 공이 살던 때가 1250년대이니 예빈경 이구 할아버지하고 비슷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신송의 아버지나 조부가 누군지 미상인 점이 유감스럽습니다.
이도자 에 대해 추후로 시간이 된다면 더 찾아봐야 될것 같습니다. 이도자 라는 분의 아버지가 누구고 할아버지나 증조가 누군가 까지만 나왔더라도 좋았을텐데 유감스럽게도 이 분에 대한 기록은 여기까지이군요. 이도자 가 살던 때는 고려말기이니 우리 족보의 인물들 중에는 7세 판중추부사 사성, 동정 사순, 도평의사사사 흥원, 인근, 8세 평의공 이억, 충무위 이동대 등과 비슷한 시대였을 것입니다.
이신송과 이도자 등. 비록 우리 족보에는 실전되어 실리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우계이씨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신송이나 이도자 등이 이미 우계이가 라는 본관을 사용했으니 우리 시조가 예빈경 이구라는 어떤 주장, 즉 1984년 갑자보의 서문 중 우리 시조를 구 혹은 순우로 운운한 잘못된 기록을 지적하는 어떤 대목이 있는데 그 부분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 주장은 말이 될수 없음이 밝혀진 셈입니다.
이관석
시조는 양子식字이시고 관향을 이구 선조님때 우계로 사용한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12-01-03
우계인
이구 할아버지와 동시대에 살았던 배정지씨의 외할아버지가 우계이씨 이신송이라 합니다. 이미 이구 할아버지 이전에 우계라는 본관을 썼었다는 확실한 확증이 되는 셈입니다.